[한상춘의 World View] 7가지 덫에 걸린 세계경제…S보다 무서운 복합위기 온다

입력 2022-07-05 17:22   수정 2022-07-06 08:46

올해 상반기도 마무리됐다. 연초 비교적 낙관적으로 출발했던 세계 경제는 지난 2월 이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전쟁, 미국 중앙은행(Fed)의 금리 인상, 중국의 경제봉쇄 조치, 신흥국 금융위기 등과 같은 대형 변수가 순차적으로 발생하면서 하반기 들어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올해 상반기 대형 변수들은 ‘물가 상승’과 ‘성장률 훼손’에 유독 큰 영향을 주고 있는 점이 종전과 다르다. 세계적 예측기관들이 지난해 말과 올해 6월 내놓은 전망치를 비교해 보면 상반기 대형 변수들이 올해 세계 경제 성장률을 1.3%포인트 이상 떨어뜨리고 세계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2%포인트 이상 끌어올리는 것으로 나온다.
인플레·저성장의 덫
세계 경제를 보는 시각도 빠르게 악화하고 있다. 연초 ‘과연 세계 경기가 침체될 것인가’를 놓고 벌어진 경기 논쟁은 4월 국제통화기금(IMF) 전망에서 ‘슬로플레이션’ 우려를 처음으로 제기하며 분위기가 바뀌었다. 그 후 두 달도 채 지나지 않는 시점에 세계은행은 ‘스태그플레이션’이 닥칠 가능성을 공식적으로 경고했다.

최근에 나타나고 있는 스태그플레이션이 무서운 것은 태생적 한계인 정책 대응이 더욱 어렵다는 점이다. 1980년대 초 스태그플레이션은 2차 오일쇼크 파장이란 ‘단선형 성격’인 데 비해 이번에는 지정학적 위험, 이상기후, 공급망 훼손, 출구전략, 경제봉쇄 조치 등과 같은 ‘다중 공선형 성격’이 짙기 때문이다.

다중 공선형 스태그플레이션의 특징은 정책 목표에 가장 적합한 정책 수단을 가져가는 틴버겐 정리(Tinbergen’s theorem)로 경제정책을 추진하더라도 먹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세계 경제 주요 현안이 ‘덫(stuck)’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세계 경제가 안정 성장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일곱 가지 덫에서 탈출해야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첫째, 최대 현안은 ‘인플레 덫’이다. 30~40년 만에 최고 수준인 각국의 물가는 이제 예사로 보일 정도다. 선진국 국민들은 인플레이션으로 겪는 경제 고통이 하늘을 찌를 태세다. 개발도상국 국민들도 마찬가지다. 금융위기 이후 실업 문제로 거세게 불었던 ‘아랍의 봄’이 이번에는 인플레 문제로 다시 불거질 조짐이다.

최근 인플레이션의 실체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이론적 배경이 필요하다. 인플레는 원인별로 비용 상승과 수요 견인으로, 상승 속도에 따라 마일드·캘로핑·하이퍼로, 경기와 관련해 스태그플레이션·슬로플레이션, 정책 의지와 결부돼 리플레이션·디스인플레이션, 그리고 공유 경제와 관련해 데모크라플레이션 등으로 구분된다. 코로나발 인플레가 심각한 것은 같은 통화정책 시차(9∼1년) 내에 모든 가능성이 한꺼번에 거론되기 때문이다.

Fed가 위기를 키웠다는 비판을 받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선제성(preemptive)’이 생명인 통화정책에서 지난해 4월 이후 ‘쇼크’라 부를 만큼 불거진 인플레 실체를 제대로 파악하고 선제적으로 대응했다면 올 3월 이후 소비자물가상승률이 물가 목표선인 2%를 무려 네 배 이상 웃도는 8%대 수준까지 급등할 수 있었겠느냐고 반문한다.



둘째, 올해 상반기 미국과 중국 경제 상황을 보면 세계 경제는 ‘저성장의 덫’에 빠지고 있다. 미국 경제는 지난 1분기 성장률 -1.6%에 이어 2분기 성장률도 -2.1%(애틀랜타 연방준비은행 GDP Now) 추락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지난 6월 Fed는 올해 미국 성장률을 작년 12월 전망치 4.8%에서 잠재성장률 1.75%보다 낮은 1.7%로 크게 내려 잡았다.

중국 경제 상황은 더하다. 지난해 1분기 18.3%에 달했던 성장률이 올해 1분기에는 4.8%로 급락했다. 경제봉쇄 조치가 집중된 2분기에는 2%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인 가운데 0% 내외로 추락할 것이라는 비관론도 고개를 드는 상황이다. 모든 예측기관이 올해 성장률은 목표선인 5.5%는 달성하지 못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부존 자원국을 제외한 다른 국가들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특히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전쟁이 장기화함에 따라 그 피해가 집중되고 있는 유로 경제는 올해 2분기 성장률이 마이너스 수준으로 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의 고집으로 아베노믹스를 추진하고 있는 일본 경제도 엔저 효과가 종전만 못하다.
출구전략과 빚의 덫
셋째, 경기가 침체되면 각국 중앙은행이 물가 잡기에 나서더라도 다른 정책 목표를 크게 손상시킬 확률이 높아 금리 인상 등을 쉽게 추진하지 못하는 ‘출구전략의 덫’에 빠진다. 특히 인플레 진단에 실패했다는 비판을 받는 Fed는 뒤늦게 금리 인상에 나서고 있지만 또 하나의 목표인 고용을 희생시킬 우려 때문에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올해 스위스 다보스 포럼에 참석한 제이슨 퍼먼 미국 하버드대 교수는 인플레이션율 1%포인트를 잡기 위해서는 실업률이 6%포인트 높아지는 것을 감수해야 한다는 ‘희생률(sacrifice ratio)’을 제시했다. 한 번 높아진 물가는 잡기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물가를 잡기 위해서는 엄청난 기회비용을 치러야 한다는 의미다.

지난해 10월 IMF 권고대로 물가 잡기에만 몰두해 왔던 각국 중앙은행은 경기와 물가, 그리고 금리 간 ‘트릴레마’ 국면에 빠져 제각각 대응하고 있다. 미국과 친미 국가들은 물가를 잡기 위해 금리를 올리는 반면 중국과 친중 국가들은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금리를 내리고 있다. 대발산(great divergence)의 시작이다.

넷째, 인플레 안정에 최우선을 둔 각국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올림에 따라 세계 경제는 ‘빚의 덫’에 빠지고 있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세계 빚은 2007년 113조달러에서 올해 1분기 230조달러로 두 배 이상 급증했다. 세계 경제가 빚의 덫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면 ‘복합불황’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특히 금융위기 이후 Fed의 제로 금리정책에 따라 빚의 무서움을 모르고 달러 부채를 조달한 신흥국이 문제다. 국제 금리가 올라가는 시기에 달러 부채 만기일이 겹치기 때문이다. 국제금융협회(IIF)에 따르면 신흥국들은 2025년까지 매년 4000억달러 이상 달러 부채 원리금을 갚아야 한다.

올 들어 신흥국 위기가 본격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스리랑카, 파키스탄 등 중국의 일대일로 계획에 적극 참여한 나라들이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했다. 모리스 골드스타인의 위기판단지표로 보면 취약 신흥국 74개국 중 무려 58개국이 금융위기가 발생할 확률이 높은 것으로 나온다.
환율·인구절벽의 덫
다섯째, 각국은 경기 침체와 인플레를 자체적으로 해결할 가능성이 낮아지자 다른 국가에 전가하기 위해 자국 통화 가치를 적극적으로 조절해 보지만 ‘환율의 덫’에 빠져 오히려 세계 경제가 당면한 스태그플레이션을 더욱 미궁에 빠트릴 가능성이 높다. 벌써부터 1930년대와 같은 대공황을 우려하는 시각도 고개를 들고 있다.

각국의 자국통화 정책은 양분화돼 있다. 일본처럼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자국 통화를 평가절하하더라도 ‘마셜-러너 조건’, 즉 외화표시 수출 수요의 가격탄력성과 자국통화표시 수입 수요의 가격탄력성을 합한 것이 ‘1’을 넘지 않아 수출 증대와 경기부양 효과가 크게 나타나지 못하고 있다.

반면 미국을 비롯해 고물가에 시달리는 국가는 자국 통화 가치를 끌어올리고 있지만 동일한 목적으로 경쟁국도 평가절상에 뛰어들어 수입 물가를 안정시키는 효과가 반감되고 있다. 오히려 평가절상에 따른 수출 감소분을 보완할 만큼 내수가 확대되지 않아 경기를 더 침체시킬 가능성이 높다.

환율전쟁은 비협조적 게임(noncooperative game)으로 대표적인 근린궁핍화 정책이다. 특정국의 평가절하 정책은 자국의 수출과 경기상의 어려움을, 평가절상 정책은 인플레를 경쟁국에 전가시키기 때문이다. 최근처럼 세계 경제가 어려울수록 각국은 ‘협조적 개임(cooperative game)’에 임해야 한다.

여섯째, “세계 인구는 20세기 이후 120년 동안 지속돼온 팽창시대가 마무리되고 감소 국면에 접어들었다” “돌이킬 수 없는 인구구조 변화가 앞으로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에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커다란 변화를 몰고 올 것”이라는 보고서가 연일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인구절벽의 덫’에 걸린 세계 경제에 대한 경고다.

세계 인구절벽 논쟁에 중심에 서 있는 국가는 중국과 한국이다. 1년 전 “중국 인구가 감소했다”는 파이낸셜타임스(FT) 보도를 계기로 제기된 중국의 인구절벽 논쟁이 최근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지난해 중국의 인구증가율이 0.03%에 그쳐 사실상 정점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한국 인구(내국인 기준)도 내년에는 5000만 명 선이 무너질 것으로 예측됐다.

앞으로 더 심각해지고 활발하게 논의될 인구절벽의 덫이 무서운 것은 간단하게 총공급 곡선(AgS·노동시장과 생산함수에 의해 도출)과 총수요 곡선(AgD·투자와 저축을 의미하는 ‘IS 곡선’, 유동성 선호와 화폐 공급을 의미하는 ‘LM 곡선’에 의해 도출) 이론을 통해 보면 쉽게 이해된다.

세계 인구가 감소해 총공급 곡선이 좌측(AgS0→AgS2)으로 이동하면 성장률이 떨어지는 대신 인플레이션율이 올라가는 스태그플레이션 국면이 발생한다. 인구절벽의 덫으로 세계 경제의 스태그플레이션이 장기화하면 세계 인구 증가 시기에 누적돼온 디스토피아 문제가 한꺼번에 노출될 가능성이 크다.
마지막 디스토피아의 덫…‘공동선’으로 극복해야
일곱째, 매년 초 스위스 작은 휴양 도시 다보스에서 열리는 세계경제포럼(WEF)이 2015년부터 단골 메뉴로 다루는 유일한 과제가 세계 경제가 ‘디스토피아(dystopia)의 덫’에 걸린 문제다. 미국도 ‘우리 국민, 우리 미래(our people, our future)’라는 버락 오바마 정부 시절에 제시한 미래 아젠다에서 날로 심각해지는 디스토피아 문제를 거론했다.

1990년대 이후 각국이 디스토피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 왔지만 뚜렷한 성과가 없는 상황이다. 앞으로 파급력이 높은 디스토피아로는 △수자원 위기 △기후변화 대응 실패 △생물학적 다양성 손실과 생태계 붕괴 등이 꼽힌다. 식량자원, 수자원, 에너지, 기후변화 등을 미국 국가정보회의(NIC)에서 2030년 가장 중요한 메가트렌드로 선정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나온 우려다.

디스토피아 시대에 있어서는 종전의 규범과 제도보다 정의와 도덕 등과 같은 이른바 행동주의 가치와 기본이 더 중시될 가능성이 높다. 디스토피아, 그 자체가 불확실성을 내포해 위험이 상수항(함수 y=a+bx에서 ‘a’)이 되는 2020년대에 모든 경제 주체가 생존하기 위해서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가 최고 덕목으로 떠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세계 경제뿐만 아니라 한국 경제도 일곱 가지 덫에 모두 걸려 있다. 새 정부가 지금의 우리 경제를 복합 위기로 규명하고 앞으로 경제 태풍 위기가 닥칠 것으로 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정책당국뿐만 아니라 여야 정치권, 기업, 국민 모두가 위기 극복에 나서는 ‘프로 보노 퍼블리코(pro bono publico·공공선)’ 정신을 발휘해야 할 때다.

■ 한상춘은

한국은행,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대우경제연구소(DWERI), 미국 와튼계량경제연구소(WEFA), 중국 옌볜시 해외문제연구소, 한국경제신문 등을 거친 국제금융 전문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세계적 경제지인 니혼게이자이신문 등으로부터 아시아의 유망한 이코노미스트 5인 중 한국 대표로 뽑혔고 한국 언론 사상 최장 칼럼인 ‘한상춘의 국제경제읽기’를 23년째 매주 연재해 오고 있다. 저서로는 《UR과 한국 경제》 《또 다른 10년이 온다》 《2만 번의 통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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